• 1월 15일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가 열립니다.

    그런데 홈택스 자료를 확인해보니 지난달에 맞춘 안경 값이나

    산후조리원 비용이 보이지 않아 당황하셨나요.

    시스템 오류가 아닙니다.

    안경점이나 일부 병원에서 국세청으로 자료를 늦게 넘기거나

    누락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가만히 있으면 수십만 원의 공제 혜택을 날리게 됩니다.

    오늘은 홈택스에 뜨지 않는 의료비를 챙겨서 등록하는 방법과 필수 서류 준비법을 정리해 드립니다.

    1 . 주로 누락되는 3대 의료비 항목

    병원 진료비는 대부분 자동으로 뜨지만

    아래 항목들은 사업자가 자료를 직접 제출해야 하므로 누락이 잦습니다.

    내가 쓴 돈이 맞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시력교정용 안경 및 콘택트렌즈 1인당 연 50만 원까지 공제 가능합니다.

    선글라스나 미용 목적의 렌즈는 불가능합니다.

    산후조리원 비용 총급여 7천만 원 이하 근로자라면 출산 1회당 200만 원까지 공제됩니다.

    보청기 및 장애인 보장구 휠체어 보청기 등 구입 비용도 의료비 공제 대상입니다.

    2. 조회되지 않는 의료비 신고센터 이용 방법

    국세청은 간소화 서비스 오픈 직후 며칠 동안 신고센터를 운영합니다.

    이 기간에 신고하면 국세청이 해당 업체에 연락해 자료 제출을 요청해 줍니다. 가장 간편한 방법입니다.

    이용 기간 매년 1월 15일부터 1월 17일까지 (약 3일간만 운영)

    신고 사이트 국세청 홈택스 (www.hometax.go.kr)

    접수 경로 상세 설명

    • PC에서 홈택스 사이트 접속 후 로그인
    • 상단 메뉴 [장려금 연말정산 전자기부금] 클릭
    • [연말정산간소화] 메뉴 클릭
    • 우측 메뉴 중 [조회되지 않는 의료비 신고센터] 클릭
    • 누락된 병원이나 안경점 상호를 검색하여 신고 접수

    처리 결과는 1월 20일 이후 간소화 자료에서 최종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신고 기간을 놓쳤을 때 영수증 직접 챙기는 법

    만약 1월 17일이 지났거나 신고센터를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았다면 종이 서류를 직접 챙겨야 합니다.

    안경 및 렌즈 구매했던 안경점에 방문하여 연말정산용 시력교정 확인서 발급을 요청하세요.

    안경점에서는 전산으로 바로 출력해 줍니다.

    카드 영수증만으로는 시력 교정용인지 증명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전용 영수증을 받는 것이 확실합니다.

    산후조리원 조리원에 전화하여 이용자의 이름과 이용 금액이 적힌 영수증을 요청하여 받습니다.

    준비한 서류는 회사 연말정산 담당자에게 간소화 PDF 자료와 함께 별도로 제출하면 됩니다.

    4. 실수하면 가산세 무는 실손보험금 주의사항

    의료비 세액공제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실손보험금입니다.

    내가 병원비로 100만 원을 썼더라도 보험사에서 실비 보험금으로

    80만 원을 돌려받았다면 공제 대상 의료비는 20만 원입니다.

    • 공식: 내가 지출한 의료비 – 보험사 수령 보험금 = 공제 가능 금액

    보험금으로 돌려받은 금액까지 포함해서 공제를 받으면

    추후 국세청 전산망 검증 과정에서 적발되어 가산세까지 물어낼 수 있습니다.

    반드시 보험금 수령액을 차감하고 신고하시기 바랍니다.

    5. 자주 묻는 질문

    안경 구입비는 신용카드 공제와 중복 되나요?

    • 네 가능합니다. 안경 구입 비용은 의료비 세액공제와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동시에 중복으로 받을 수 있는 혜택 항목입니다.

    맞벌이 부부 의료비는 누가 받는 게 유리한가요?

    • 의료비는 총급여의 3퍼센트를 초과한 금액부터 공제됩니다. 따라서 연봉이 낮은 배우자 쪽으로 몰아주는 것이 공제 문턱 3퍼센트를 넘기기 쉬워 유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동네 약국에서 산 약값도 되나요?

    • 치료 목적으로 구입한 의약품은 공제 대상입니다. 다만 편의점에서 산 상비약이나 건강기능식품은 대상이 아닙니다. 약국에서 샀더라도 영수증을 챙겨두는 것이 좋습니다.

    마무리 체크리스트

    발행 전 마지막으로 확인하세요.

    • 회사 담당자에게 PDF 자료 외에 종이 영수증을 따로 낸다고 말했는가
    • 안경점에서 시력교정 확인서(영수증)를 챙겼는가
    • 산후조리원 영수증에 이용자 이름이 정확한가
    • 실손보험으로 돌려받은 돈은 의료비에서 뺐는가
    • 부모님 의료비를 내가 결제했다면 내역을 포함했는가

  • 호의라는 이름의 덫, 나는 오늘 도망치기로 했다

    심장이 흉곽을 뚫고 나올 것처럼 벌렁거린다.

    식은땀이 흐르고 시야가 흐릿하다.

    조금 전 급하게 삼킨 공황장애 약은 아직 내 혈관에 닿지 못한 걸까.

    아니면, 약으로도 누를 수 없는 거대한 억울함이 내 몸을 집어삼킨 걸까.

    사무실 모니터 위로 멍한 시선을 던진 채, 나는 떨리는 손으로 오늘의 비극을 기록한다.

    “밥 먹고 와.”

    결혼식에 참석하려던 내 등을 떠밀며 팀장님이 던진 그 한마디.

    나는 바보같이 그 말을 ‘호의’라 믿었다.

    30분만 얼굴을 비추고 오려던 계획을 수정해,

    동료들과 밥을 먹고 사진을 찍었다.

    늦게 복귀해도 괜찮다는 허락인 줄 알았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쿠키까지 샀다.

    하지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나에게 날아온 건,

    따뜻한 환대가 아닌 날 선 비수였다.

    “저 지금 무시 한거에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밥 먹고 오라는 지시를 따른 것이,

    그에게는 자신을 무시하고 맘대로 늦게 온 하극상이 되어 있었다.

    1시간 30분의 외출. 그게 내 죄목이었다.

    내 책상 위에 놓인 쿠키가 처량해 보였다.

    내가 눈치가 없었던 걸까? 자책감이 밀려오던 찰나,

    차가운 분노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나는 무시를 한 게 아니다. 변덕스러운 기분의 덫에 걸린 것이다.

    그리고 진짜 코미디는 그 직후에 시작졌다.

    나에게 불호령을 내린 그는, 퇴사한 직원이 찾아왔다며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

    지금 시계를 보니 그가 자리를 비운 지 1시간 30분이 넘어가고 있다.

    내가 밥 먹고 온 1시간 30분은 ‘무시’이고,

    그가 수다 떨러 나간 1시간 30분은 ‘업무’인가?

    텅 빈 그의 자리를 보고 있자니, 억지로 붙잡고 있던

    마지막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것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자신의 기준은 한없이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숨 쉴 구멍조차 주지 않는 폭력.

    숨이 턱턱 막혀오는 이 증상은,

    내 몸이 나에게 보내는 가장 강력한 경고다.

    “도망쳐. 여기서 더 버티면, 너는 정말로 망가져.”

    나는 직장에 잘 적응하고 다니며 사는 인생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다시 한번 더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런 상사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맷집을 키우는 건 성공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그저 내 영혼을 갉아먹는 자해일 뿐이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팀장의 빈자리를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사직서를 쓴다.

    오늘의 이 숨 막히는 공포, 억울함, 그리고 떨림. 기억하고 벗어나자..

    이것은 훗날 내가 성공했을 때, “그때 그 진흙탕에서 빠져나오길 정말 잘했다”고

    회상할 탈출의 시그널 중에서 강력한 그것 들중에 하나이다.

    약 기운이 돌기를 기다리며 나는 다짐한다.

    나는 맷집 좋은 부하직원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를 지킬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나를 위해 울어도 괜찮다.

  • 복직 첫날, 나는 그들의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기로 했다

    회사가 고등학교가 되어 있었다

    복직 첫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공기가 달랐다.

    “오랜만이야, 몸은 좀 어때?”라는 따뜻한 인사 대신,

    여직원들은 무리 지어 무언가 속삭이며 웃고 있었다.

    내 옆자리였던 친한 동료는 어느새 저 멀리 자리를 옮겨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눈인사를 건넸지만, 그녀는 내 시선을 황급히 피했다.

    그때는 몰랐다. 점심시간, 복도를 지나다 우연히 휴게실 앞을 지나기 전까지는.

    “그 사람, 진짜 이기적이지 않아? 일도 제대로 안 하면서.”

    비소 섞인 웃음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나는 모른 척 지나쳤지만 그 목소리는 하루 종일 귓가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멍하니 앉아 생각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이 사무실은 거대한 고등학교가 되어 있었구나.

    뒷담화라는 이름의 접착제

    한 달쯤 조용히 그들을 관찰했다.

    그들의 타겟은 주기적으로 바뀌었다.

    처음엔 복직한 남자 동료 한 명이 표적이었다.

    일 처리가 답답하다, 성격이 음침하다는 말이 돌았다.

    2주쯤 지나자 타겟은 다른 팀 여직원으로 바뀌었다.

    일을 왜 저렇게 하냐? 예전에 다른대서도 일로 사고 많이 쳤대.. 이라는 말이 돌았다.

    그 무리 안에는 미묘한 서열이 존재했고,

    누군가를 함께 깎아내리는 행위가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었다.

    공통의 적이 있어야만 뭉치는 집단.

    뒷담화는 그들의 불안한 관계를 유지하는 일종의 접착제였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무리에 속한 사람들도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늘 “내가 자리를 비우면 저 사람들이 내 욕을 하겠지”라는 불안이 깔려 있었다.

    초대가 아니라 충성 서약

    어느 날, 그 무리의 중심에 있는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씨, 오늘 점심 같이 먹을래?”

    순간 직감했다. 이건 단순한 밥 약속이 아니라 충성 서약을 하라는 초대였다.

    저 자리에 끼면 나는 그들의 뒷담화에 고개를 끄덕여야 하고,

    함께 누군가를 씹으며 동조해야 한다.

    만약 거절한다면? 다음 타겟은 내가 될 것이 뻔했다.

    “죄송해요.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요.”

    나는 거절했다.

    겉으로는 웃으며 말했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무리의 리스트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솔직히 처음엔 두려웠다.

    복직하자마자 사무실에서 은따가 되는 건 아닐까, 정보에서 소외되는 건 아닐까.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 것이다.

    나는 우아한 아웃사이더를 선택했다

    그날부터 나는 스스로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기로 했다.

    점심은 혼자 조용히 먹거나 파벌에 속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과 먹었다.

    업무 시간에는 철저히 일에만 집중했다.

    등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그저 모니터만 바라봤다.

    메신저로는 업무 이야기만 나눴고,

    누군가 다가와 “저 사람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뉘앙스를 풍기며 물으면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라는 무미건조한 대답으로 일관했다.

    동조도 하지 않았지만,

    굳이 반박하며 정의의 사도가 되려 하지도 않았다.

    회식은 최소한만 참여했고, 만약을 대비해 모든 업무는 메일이나 메신저로 기록을 남겼다.

    언젠가 그들의 화살이 나를 향할 때를 대비한 최소한의 방어막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그들은 여전히 누군가를 깎아내리느라 바빴지만, 나는 그 소음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파벌은 결국 자멸한다

    역사를 좋아해서인지 문득 조선 후기의 붕당정치가 떠올랐다.

    처음엔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서로를 견제하더니,

    나중엔 남인, 북인, 소론, 노론으로 끊임없이 쪼개졌다.

    그 끝은 무엇이었나.

    서로를 잡아먹으려다 결국 나라 전체가 병들지 않았던가.

    파벌은 단기적으로는 강해 보인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이 위압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오래가지 못한다.

    신뢰가 아닌 혐오로 뭉친 관계는,

    공통의 적이 사라지면 결국 내부에서 서로를 물어뜯으며 자멸하기 마련이다.

    직장도 똑같다.

    저 무리도 1년, 2년이 지나면 해체되거나 또 다른 무리로 쪼개질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유통기한 있는 드라마에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퇴근한다

    요즘 나는 퇴근하면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필사를 한다.

    주말에는 내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난다.

    그 자리에서는 회사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으려고 한다.

    회사에서 나는 투명 인간이 아니다.

    내 몫의 업무를 제대로 해내고, 밝게 인사하고, 협조 요청이 오면 기꺼이 돕는다.

    단지 그들의 막장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을 뿐이다.

    가끔 그 무리 중 한 명이 나를 힐끔거린다. “왜 우리한테 안 끼지?”라는 눈빛이다.

    나는 그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지나간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퇴근한다.

    그들의 드라마는 그들이 알아서 찍게 내버려 둔다.

    당신은 지금 어떤 드라마를 찍고 있나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가.

    뒷담화 무리에 끼어 있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가,

    아니면 끼지 않으면 타겟이 될까 봐 두려운가.

    괜찮다.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거리를 두어도 된다.

    뒷담화가 시작되면 슬쩍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나는 잘 모르겠어”라고 한 발짝 물러서라.

    점심은 가끔 혼자 먹으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사적인 이야기는 줄이고 업무적인 예의만 지켜라.

    그들의 드라마는 시즌제다.

    타겟은 계속 바뀌고, 등장인물도 물갈이된다.

    굳이 당신이 그 피곤한 드라마의 조연으로 출연해 줄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들의 드라마에 엑스트라로 소모되기 위해 출근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 하루도 소음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 당신,

    당신은 이미 당신 인생의 멋진 주인공이다.

  • 카네기 인간관계론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안 되는 사람은 있었다

    한때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 푹 빠져 지냈던 적이 있다.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약 6개월간은 정말 미친 척하고 그 원칙들을 회사에서 실천했었다.

    먼저 인정하고 제안하기, 거절할 땐 이유와 대안 제시하기, 논쟁을 피하며 질문으로 대화하기.

    분명히 효과는 있었다.

    그토록 권위적이던 상사는 내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었고,

    일을 떠넘기던 동료는 미리 양해를 구하며 일정을 조율해 왔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선배마저 나의 든든한 조언자가 되어주었으니까.

    그런데 딱 한 사람, 우리 팀의 김 대리만큼은 예외였다.

    그는 내 뒤에서 험담을 일삼았고, 회의 때마다 내 아이디어를 교묘하게 가로챘으며,

    문제가 생기면 귀신같이 책임을 떠넘기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도 카네기의 모든 방법을 동원했었다.

    진심으로 인정하려 했고, 그의 입장에서 이해하려 애썼고,

    불필요한 논쟁을 피했다.

    호의가 권리가 되는 순간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상황은 더 나빠졌다.

    그는 나의 너그러움을 만만함으로 받아들였고,

    나의 배려를 호구의 증거로 삼아 더 뻔뻔하게 나를 이용했다.

    그날 밤, 나는 카네기의 책을 다시 펼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이 훌륭한 고전에는 치명적인 빈틈이 하나 있었다.

    카네기는 관계 맺는 법은 알려주었지만,

    포기하는 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처음엔 내가 잘못 적용한 줄 알고 자책도 많이 했다.

    내가 덜 진심이었나, 내가 그를 다 이해하지 못한 걸까 싶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세상엔 정말로 카네기의 원칙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선을 베풀면 그걸 약점으로 잡아 착취하려는 사람,

    타인의 고충 따위엔 관심이 없는 사람,

    혹은 현재의 불합리한 구조에서 이득을 보고 있어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 말이다.

    1936년의 이론과 2025년의 현실

    카네기의 원칙은 기본적인 선의를 가진 사람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현실의 직장에는 선의가 없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나는 3개월 동안 김 대리를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그것은 관계 개선이 아니라 일방적인 감정 노동일 뿐이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 선배가 툭 던진 말이 내 머리를 때렸다.

    “너 왜 그렇게 김 대리한테 당하고만 있어? 카네기도 좋지. 근데 그 책은 1936년 미국에서 나왔어.

    2025년 한국 직장에서 악의를 가진 사람한테까지 그 원칙을 쓰라고 쓴 건 아닐걸?”

    그랬다. 카네기는 좋은 사람들과 더 나은 관계를 맺는 법을 알려줬을 뿐,

    나쁜 사람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법은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모든 사람을 지키려다 정작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카네기가 말하지 않은 것, 선 긋기

    그날 이후 나는 전략을 수정했었다.

    카네기 원칙을 버린 게 아니라 적용 대상을 구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권위적이지만 팀을 생각하는 상사나 서툴지만 노력하는 후배 같은 선의가 있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카네기 원칙을 적용했다.

    하지만 김 대리 같은 악의적인 사람에게는 명확한 선을 긋기 시작했다.

    거절할 때 구구절절한 이유나 대안을 설명하지 않고 건조하게 사실만 남겼다.

    구두 지시는 정중히 거절하고 메일이나 메신저로만 소통해 증거를 남겼다.

    무엇보다 그를 이해하려 애쓰지 않았다.

    그가 변하기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업무상 필요한 최소한의 접촉만 유지하며 철저히 감정 투자를 멈췄다.

    처음엔 내가 너무 냉정한가 싶어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편해졌다.

    내가 만만한 호구가 아님을 보여주자,

    김 대리의 부당한 요구도 거짓말처럼 줄어들기 시작했다.

    포기하는 타이밍을 아는 것도 기술이다

    전략을 바꾸고 2개월 후,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그 사람이 또다시 내 아이디어를 도용했을 때,

    나는 더 이상 참지 않고 모아둔 증거 자료를 팀장에게 보고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는 팀장의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관계를 개선해 보려고 노력했는데 안 되더라고,

    그래서 이제는 나를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고.

    그날 나는 배웠다.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이 관계는 안 되겠다고 포기하는 타이밍을 아는 것 또한

    중요한 인간관계의 기술이라는 것을.

    오랜 시간 노력해도 변화가 없다면,

    그 관계가 나를 갉아먹고 있다면,

    상대가 내 선의를 이용만 한다면 과감히 손을 놓아야 한다는 것을.

    나를 지키는 것이 가장 먼저다

    카네기 책을 덮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그의 원칙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맹신하지는 않는다.

    카네기 원칙은 좋은 사람을 더 좋은 관계로 발전시키는 도구이지,

    악한 사람을 개과천선시키는 마법 지팡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과 잘 지낼 필요가 없다.

    어떤 관계는 과감히 포기하고 선을 긋는 것이 나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지금도 인간관계 때문에 자책하고 있는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저 카네기의 원칙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났을 뿐이다.

    그러니 부디 소중한 에너지를 밑 빠진 독에 붓지 말자.

    당신의 진심은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들에게 쓰기에도 모자라니까.

    친절하되 친하지 않게, 정중하되 단호하게.

    그것이 카네기가 책에 미처 적지 못한,

    내가 몸으로 부딪치며 배운 진짜 현실의 처세술이었다.

  • “일은 할 만한데 사람이 힘들어서 퇴사를 고민하는 당신에게”

    “일은 할 만한데, 사람이 너무 힘들어요.”

    작년 이맘때쯤, 나는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했다.

    일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맡은 프로젝트는 꽤 재미있었고 업무 강도도 버틸 만했다.

    그런데 매일 아침 출근길, 발걸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 때문이었다.

    내 의견은 듣지도 않고 무시하는 까다로운 상사,

    틈만 나면 은근슬쩍 자기 일을 미루는 옆자리 동료,

    회의 때마다 공격적인 말로 사람을 위축시키는 선배.

    이러다 내가 먼저 무너지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때 군 시절 읽었던 낡은 책 한 권이 떠올랐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었다.

    1936년에 쓰인 책이라 고리타분할 줄 알았는데,

    다시 펼친 첫 페이지부터 마치 지금 내 상황을 보고 쓴 것 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어 한다.”

    이 한 문장이 꽉 막혀 있던 내 회사 생활의 숨통을 틔워주었다.

    내가 틀린 게 아니라, 방법이 틀렸다

    책을 읽으며 뼈아프게 깨달은 건,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늘 똑같았다는 사실이다.

    상사가 내 말을 무시하면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라며 정면으로 맞섰고,

    동료가 일을 떠넘기면 억지로 받으면서 속으로만 삭였고,

    선배가 지적하면 “죄송합니다”만 반복하며 주눅 들어 있었다.

    나는 내심 그들이 바뀌길 바랐다.

    상사가 내 말을 들어주길, 동료가 양심을 찾길, 선배가 좀 너그러워지길.

    하지만 그들은 바뀌지 않았다.

    카네기는 말했다. “사람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대응은 바꿀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바꾸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내가 그들에게 반응하는 방식을 바꾸는 실험을 시작했다.

    권위적인 상사와의 첫 번째 실험

    가장 먼저 바꾼 건 ‘내 말이 곧 정답’인 팀장님과의 대화였다.

    예전엔 억울해서라도 내 의견을 관철하려 들었지만, 이번엔 전략을 바꿨다.

    논쟁을 피하고 먼저 그의 중요성을 인정해 주기로 한 것이다.

    팀장이 비효율적인 방식을 고집할 때, 나는 반박 대신 이렇게 말했다.

    “팀장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 방법도 좋고요.

    다만 한 가지를 보완하면 팀장님 의도대로 결과가 더 잘 나올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어떨까요?”

    먼저 인정하고, 그다음에 제안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늘 내 말을 자르던 팀장이 끝까지 귀를 기울였다.

    “그것도 괜찮네.” 그날 나는 깨달았다.

    팀장이 변한 게 아니었다. 내 접근 방식이 달라지니 결과가 달라진 것이다.

    무례한 동료에게 우아하게 선 긋기

    다음은 습관적으로 일을 떠넘기는 옆자리 동료였다.

    “바쁘지 않으면 이것 좀 부탁해”라는 말에 늘 거절 못 하고 끙끙 앓았지만,

    카네기의 조언대로 내 경계를 명확히 하기로 했다.

    무조건적인 “Yes”도, 감정적인 “No”도 아니었다.

    “도와드리고 싶은데 지금 제 마감이 내일이라 지금은 어렵네요.

    대신 금요일 오후라면 30분 정도 시간을 낼 수 있는데,

    그때 봐드려도 될까요?”

    거절하되 이유를 명확히 하고, 내가 가능한 대안을 제시했다.

    관계가 틀어질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동료는 오히려 내 상황을 이해했고,

    “그럼 금요일에 부탁할게”라며 내 시간을 존중하기 시작했다.

    관계도 지키고, 내 일도 지킬 수 있었다.

    까다로운 선배를 내 편으로 만들기

    가장 힘들었던 건 매사에 지적만 하던 선배였다.

    예전엔 “죄송합니다”라며 피하기 바빴지만,

    이번엔 그를 나의 ‘멘토’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사람은 누구나 가르치고 싶어 한다는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선배님, 제가 이 부분을 자꾸 놓치는데 선배님은 어떻게 체크하시나요?

    배우고 싶습니다.”

    선배를 ‘나를 비난하는 사람’에서 ‘나를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의 위치로 올려놓았다.

    며칠 뒤 그가 알려준 팁으로 일을 처리하고 다시 찾아가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날 이후 선배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날 선 지적은 애정 어린 조언으로 바뀌었고,

    어느 날은 “요즘 일 잘하네”라는 칭찬까지 들었다.

    인간관계도 결국 기술이다

    데일 카네기의 책은 여전히 내 책상 한구석에 꽂혀 있다.

    회사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제각각이다.

    하지만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나는 더 이상 사람 때문에 밤잠을 설칠 만큼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저 사람이 문제라고, 저 사람만 없으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대응 방식이었다는 것을.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사람 때문에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그들을 바꿀 수도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바꿀 수 있다.

    바로 당신이 대응하는 방식이다.

    비난 대신 인정을, 무조건적인 수용 대신 현명한 거절을,

    논쟁 대신 질문을 선택해 보자. 인간관계도 결국 기술이다.

    배우고 연습하면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

    100년 전의 카네기가 건넨 조언이 오늘 출근길이 버거웠던

    당신에게도 작은 무기가 되기를 바란다.

    사람은 바꿀 수 없지만, 당신의 대응은 언제든 바꿀 수 있으니까.

  • 2025년 귀속 직장인이 꼭 체크해야 할 7가지 변경사항

    2026년 2월, 웃으려면 지금 확인해야 할 7가지 변화

    2026년의 환급액은 2025년의 내가 만든다

    어느덧 12월도 끝자락이다.

    우리는 습관처럼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지만, 직장인에게는 아직 끝내지 못한 숙제가 하나 남아 있다.

    바로 13월의 월급, 연말정산이다.

    연말정산은 “올해 어떻게 살았는지”를 내년 초에 한 번에 정리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1월이 되어서 부랴부랴 서류를 찾으려면 이미 늦다.

    특히 결혼이나 출산을 했거나, 월세와 대출금을 갚고 있는 3040 직장인이라면

    지금 무엇을 챙기느냐에 따라 2월 월급통장에 찍힐 숫자가 완전히 달라진다.

    2026년 2월, 웃으면서 환급받기 위해 2025년 귀속 연말정산에서 놓치면 안 될 7가지 포인트를 정리했다.

    1. 올해 결혼했다면 ‘결혼 세액공제’ 100만 원

    올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신설된 ‘결혼 세액공제’다.

    2025년에 혼인신고를 했다면,

    이번 연말정산에서 부부 합산 최대 100만 원(1인당 50만 원)을 세금에서 깎아준다.

    초혼이든 재혼이든 상관없다.

    생애 1회 적용된다. 중요한 건 예식일이 아니라 ‘혼인신고일’ 기준이라는 점이다.

    만약 아직 신고 전이라면, 해를 넘기기 전에 신고하는 게 유리할지 따져보는 것도 전략이다.

    2. 둘째 아이부터 혜택이 확 늘었다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반가운 소식이다. 자녀 관련 혜택이 꽤 두툼해졌다.

    자녀 세액공제 금액이 늘어났다.

    첫째는 15만 원으로 같지만,

    둘째는 30만 원에서 35만 원으로 올랐다.

    셋째부터는 1인당 30만 원씩 추가로 공제된다.

    회사에서 받는 돈도 세금을 덜 뗀다.

    출산지원금은 전액 비과세(세금 0원)이고, 매달 월급명세서에 찍히는

    출산·보육수당의 비과세 한도도 월 10만 원에서 월 20만 원으로 늘었다.

    3. 산후조리원, 부모님 병원비 영수증 챙기기

    의료비 공제의 문턱이 대폭 낮아졌다.

    가장 반가운 건 산후조리원 비용이다.

    예전엔 총급여 7천만 원 이하만 공제됐지만,

    이제 소득 제한 없이 모든 직장인이 200만 원 한도 내에서 공제받을 수 있다.

    또 하나, 6세 이하 아이의 의료비도 공제 한도가 사라졌다.

    본인, 65세 이상 부모님, 장애인 가족과 마찬가지로 쓴 만큼 전액 공제 대상이 된다.

    영수증, 꼼꼼히 챙겨야 한다.

    4. 청약통장, 월 25만 원씩 넣어야 ‘풀 공제’

    무주택 직장인이라면 청약통장 납입 전략을 다시 봐야 한다. 소득공제 한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대상: 무주택 세대주 + 총급여 7,000만 원 이하) 납입 한도가 연 240만 원에서 연 300만 원으로 커졌다.

    이 한도를 꽉 채워 40% 공제(최대 120만 원)를 받으려면,

    월 납입액을 25만 원으로 맞춰야 한다. 여유가 된다면 자동이체 금액을 조정해 보자.

    5. 월세 사는 직장인, 집주인 눈치 보지 말자

    월세 세액공제는 혜택이 커진 상태로 유지된다.

    소득 기준은 총급여 8,000만 원 이하로, 공제 한도는 연 1,000만 원으로 넉넉해졌다.

    전입신고가 되어 있고 월세를 내 명의로 이체했다면 집주인 동의 없이도 공제받을 수 있다.

    올해 이사를 했다면 이전 집과 현재 집의 계약서를 모두 챙겨두자.

    6. 주담대 갈아탔어도 공제는 유지된다

    내 집 마련을 하며 대출을 받았다면 이자 상환액 공제(장기주택저당차입금 이자상환 공제)를 체크해야 한다.

    주택 가격 기준이 시가 6억 원 이하로 완화됐고, 공제 한도도 최대 2,000만 원으로 늘었다.

    중요한 건 ‘갈아타기(대환)’다. 더 낮은 금리를 찾아 대출을 갈아탔더라도 공제 요건은 유지된다.

    혹시 은행을 바꿨다면 연말정산 서류 제출 때 누락되지 않도록 챙겨야 한다.

    7. 카드를 작년보다 더 썼다면 보너스 공제

    올해 유독 돈 쓸 일이 많았다면,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2025년 신용카드 사용액이 2024년보다 5% 이상 늘었다면,

    그 증가분의 10%를 추가로 공제해 준다. (100만 원 한도)

    결혼 준비나 이사 등으로 지출이 컸던 분들에게는 쏠쏠한 보너스가 될 것이다.

    마무리: 서류 한 장 차이가 13월의 표정을 바꾼다

    연말정산은 이미 지나간 1년을 뒤늦게 수습하는 게 아니라, 내 통장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이다.

    2025년에 혼인신고를 했는지, 청약통장에 얼마나 넣었는지,

    산후조리원 영수증을 챙겼는지. 지금 이 사소한 확인들이 모여 내년 2월 월급날의 표정을 바꾼다.

    이 글을 읽고 나에게 해당되는 항목이 있다면 지금 바로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두자.

    그리고 1월 중순, 국세청 간소화 서비스가 열리면 가장 먼저 체크해 보자. 꼼꼼함은 배신하지 않는다.

  • 2026년, 우리는 무엇에 돈을 쓰게 될까?

    연말이 되면 누구나 습관처럼 하는 말이 있다.

    “내년엔 돈 좀 아껴 써야지.” “가계부 좀 제대로 써봐야지.”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물가는 오르고, 월급은 제자리걸음이고,

    숨만 쉬어도 나가는 구독료와 고정지출은 야금야금 늘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안 쓰는 것만이 정답일까?

    2026년에 돈을 잘 쓴다는 건, 무조건 아끼는 절약이 아니라

    나만의 기준을 잡는 것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다가올 2026년, 우리의 지갑을 열게 만들 6가지 흐름을 정리해봤다.

    남들이 다 사니까 사는 게 아니라,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소비를 위해 미리 읽어두면 좋은 가이드다.

    1. 가치 소비: 이 물건이 나를 설명해 줄까?

    가장 큰 변화는 가성비의 시대가 가고 정체성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단순히 싼 물건이 아니라, 내 취향과 가치관을 대변해 주는 브랜드에 지갑을 연다.

    유명한 로고가 박힌 명품보다, 작더라도 확실한 철학이 있는 스몰 브랜드를 선택한다.

    환경을 생각하는 브랜드, 윤리적인 기업, 혹은 나의 독특한 취향을 보여주는 굿즈.

    이제 소비의 기준은 “싸서 산다”가 아니라 “나 같아서 산다”로 바뀐다.

    월급은 한정되어 있기에, 앞으로는 내가 지지하는 가치가 있는 곳에만 돈을 집중하는 흐름이 더 강해질 것이다.

    2. 웰니스와 멘탈케어: 내 몸과 마음이 첫 번째 자산

    2026년의 소비자들은 지속 가능한 건강을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여긴다.

    더 예뻐지고 더 강해지기 위한 보여주기식 헬스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지키고 견디기 위한 생존형 헬스다.

    명상 앱을 구독하고, 수면의 질을 높여주는 제품을 사고,

    무리한 PT보다는 꾸준히 할 수 있는 가벼운 운동 루틴을 구매한다.

    마음의 피로를 줄여주는 서비스, 일상을 무너지지하게 않게 도와주는 소비.

    이것이 2026년 우리가 가장 아깝지 않게 돈을 쓸 분야다.

    3. AI 동행 소비: 비교는 AI가, 선택은 내가

    이제 우리는 쇼핑할 때 AI에게 결정을 맡기지 않는다.

    대신 AI를 똑똑한 비서처럼 활용한다.

    수많은 리뷰를 AI에게 요약해 달라고 하고, 최저가를 비교하게 시키고,

    내 몸에 맞는 식단과 운동 루틴을 짜달라고 한다.

    그리고 AI가 추려준 정보 중에서 내 기준에 맞는 것을 최종적으로 선택한다.

    앞으로 소비자는 더 똑똑해질 것이고,

    브랜드는 AI에게 잘 읽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필수 생존 조건이 될 것이다.

    4. 픽셀 라이프: 현실보다 디지털에서 나를 꾸민다

    오프라인에서 옷을 사는 것만큼이나, 디지털 세상 속의 나에게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게임 속 아바타나 프로필을 꾸미고, SNS 피드의 톤앤매너를 맞추기 위해 유료 템플릿을 사고,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온라인 강의를 듣는다.

    “집 밖에 안 나가는데 돈을 왜 써?”라는 말은 옛말이다.

    이제 디지털 공간은 또 하나의 현실이다.

    그곳에서 나를 증명하고 브랜딩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소비 항목이 되어가고 있다.

    5. 가격 해독: 싸다고 사지 않고, 비싸다고 피하지 않는다

    2026년의 소비자는 가격표를 그냥 보지 않는다. 그 가격 속에 담긴 의미를 해석한다.

    무조건 싸다고 사지 않는다. 반대로 비싸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 기꺼이 지불한다.

    대신 그 가격이 합당한지 리뷰와 데이터를 통해 꼼꼼하게 따진다.

    불필요한 구독 서비스는 칼같이 정리하지만, 나에게 확실한 효용을 주는 서비스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이 가격에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는 브랜드는 이제 살아남기 힘들다.

    바야흐로 내 기준 갓성비의 시대다.

    6. 셀프케어: 병 나기 전에 미리 쓰는 돈

    건강에 대한 투자는 더욱 과감해진다.

    특히 지금의 2030 세대는 “지금 관리 안 하면 나중에 병원비로 더 큰돈이 나간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영양제와 건강기능식품은 기본이고, 유전자 검사나 건강 검진처럼 내 몸을 미리 파악하는 데 돈을 쓴다.

    도수 치료나 체형 교정처럼 통증을 관리하는 소비도 늘어난다.

    이들에게 건강 소비는 지출이 아니라, 미래의 의료비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투자다.

    2026년, 현명한 소비자의 기준

    결국 2026년에 돈을 잘 쓴다는 건, 무조건 적게 쓰는 구두쇠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만의 뚜렷한 기준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월급이 들어오고 결제 버튼을 누르기 전에 한 번쯤 질문해 보자.

    이 소비가 나를 설명해 주는가? 내 몸과 마음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가?

    가격의 의미를 내가 충분히 이해했는가?

    이 질문들에 자신 있게 “YES”라고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의 2026년 소비는 충동이 아니라 전략이 될 것이다.

  • 우리는 왜 연말마다 ‘취향 성적표’에 열광할까

    가장 사적인 연말 성적표

    연말이 가까워지면 사람 마음은 묘하게 바빠진다.

    달력도 얇아지고, 거리엔 트리가 올라가고, SNS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올해의 나가 올라온다.

    그런데 올해는 유난히 눈에 띄는 풍경이 있다.

    바로 유튜브 리캡과 스포티파이 랩드다.

    사람들이 마치 학창 시절 성적표를 받듯,

    자신의 취향 카드를 들고 서로에게 보여주는 풍경이 이젠 하나의 연말 문화로 자리 잡았다.

    왜 이렇게까지 열광할까. 생각해보면 단순하다.

    우리가 1년 동안 무심코 사랑한 것들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올해의 나를 영상으로 읽다

    2025년의 유튜브 리캡은 기존과 다르다.

    올해는 단순히 음악이나 게임 콘텐츠에 국한되지 않는다.

    내가 1년 동안 무심코 눌렀던 모든 영상들이 하나의 성향으로 정리된다.

    요리 영상, 뉴스, 브이로그, 게임, 뷰티, 패션. 그 모든 조각들이 쌓여

    당신은 이런 사람이더라 하고 말해주는 방식이다.

    재미있는 건 AI가 나를 MBTI처럼 분류해준다는 것이다.

    모험가, 창의적 영혼, 철학자 같은 단어들.

    듣기만 해도 기분이 이상하게 괜찮다.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를 구구절절 설명할 때보다,

    거대 플랫폼이 던져주는 “너는 이런 타입이야”라는 말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일 때가 있다.

    12장의 카드로 완성된 취향

    리캡은 최대 12장의 카드로 나를 설명한다.

    올해 가장 많이 본 채널, 깊게 빠져들었던 관심 분야,

    새롭게 바뀐 시청 습관,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한 영상 카테고리까지.

    이 카드들을 넘기다 보면 작은 깨달음이 찾아온다.

    아, 내가 올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나는 이런 이야기들에 끌리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자연스럽게 SNS에 공유하게 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내 은밀한 취향이 누군가에게 닿아 공감을 얻는 그 기분이 좋아서다.

    당신의 음악 나이는 몇 살인가요

    연말 결산의 원조는 사실 스포티파이다.

    2025 랩드는 올해도 역시 유쾌한 방식으로 우리의 취향을 들여다본다.

    특히 리스닝 에이지라는 기능이 흥미롭다.

    내가 듣는 음악의 시대와 분위기를 계산해, 올해의 음악 나이를 알려준다.

    실제로는 20대인데 음악 나이는 50대로 나오면 어떤가.

    그냥 웃으면 된다. 취향에 나이는 없으니까.

    우리는 왜 결산을 기다릴까

    Z세대는 특히 명확하다. 취향이 곧 정체성이라는 공식이 확실히 자리 잡았다.

    우리가 SNS에서 타인의 리캡을 확인하고,

    자신의 카드를 되새기며 “너는 어떤 유형 나왔어?” 하고 묻는 건 사실 확인 작업이다.

    너와 나, 우리가 얼마나 닮았는지 확인하는 작은 놀이인 셈이다.

    그리고 어쩌면 1년 동안 흔들리고 지치고 하던 날들 속에서 내가 무엇에 웃고,

    무엇에 위로받았는지 조용히 복기해보는 치유의 시간이기도 하다.

    나를 아카이브하는 문화

    2025년의 연말 결산 열풍은 결국 나를 아카이브하는 문화다.

    디지털 시대의 자아는 내가 하는 말보다 내가 남긴 데이터가 더 정확할 때가 있다.

    유튜브가 건네는 12장의 카드, 스포티파이가 정리해준 음악 취향 보고서.

    이 둘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올해의 나를 기록하는 작은 박물관이다.

    그리고 그걸 공유하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와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아, 너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그 한마디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기도 하니까.

    기록을 넘어 나를 긍정하다

    결국 리캡은 취향의 체온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올해 당신이 사랑한 영상,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던 음악, 밤마다 찾아봤던 쇼츠.

    그 모든 취향의 조각들이 당신이 묵묵히 살아낸 시간을 증명해 준다.

    그리고 그 기록을 들여다보며 우리는 조용히 이렇게 말하게 된다.

    올해의 나는 괜찮았다. 내 취향은 참 단단했다. 그리고 내년엔 무엇을 좋아하게 될까.

    그게 바로 연말 리캡이 가진 진짜 힘이다. 기록을 넘어, 다시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힘 말이다.

  • “난 너를 믿는다”는 말이 사무치게 그리운 날

    “난 너를 믿는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걸 다 놓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올 때가 있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일이 너무 어려워서도 아니다.

    그저 이 넓은 회사에서 진심으로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흔들린다.

    요즘 ‘신인 감독 김연경’의 이야기를 보며 이상하게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열광하는 건 단지 팀을 승리로 이끌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상처받고 주눅 들어 있던 사람들이 누군가의 믿음이라는 ‘안전기지’를 만나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과정,

    그 드라마 같은 회복력에 우리의 마음이 반응했기 때문이다.

    이건 단지 코트 위의 이야기가 아니다.

    매일매일 치열한 경쟁 속에서 버티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한 번쯤 버려졌다는 감각을 느낀다

    솔직히 말해 직장에서 겪는 좌절의 대부분은 일이 아니라 관계에서 온다.

    끊임없이 평가받고, 누군가와 비교당하고, 죽어라 애쓴 만큼 인정받지 못할 때

    우리의 자존감은 서서히 바닥을 향해 내려간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화려한 조언이나 날카로운 피드백이 아니다.

    “네가 문제야”라는 지적이 아니라, “난 너를 믿어”라는 단 한 문장의 확인이다.

    김연경 감독이 선수들에게 보낸 메시지도 사실 단순했다.

    “너는 다시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투박하지만 단단한 말 한마디가 선수들의 근육보다,

    기술보다 먼저 그들의 존재를 붙잡아 일으켰다.

    성장은 혼자서 일어나지 않는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관계적 안전기지’라고 부른다.

    잠시 무너져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공간, 실수조차 배움으로 품어주는 관계.

    사람이란 참 묘해서, 내 뒤에 든든한 안전기지가 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밖으로 나아가 모험을 하고 시련을 견딜 힘을 얻는다.

    우리는 이 안전기지가 있을 때 ‘외상 후 성장(PTG)’을 경험한다.

    상처를 입었지만 무너지는 대신, 그 상처를 딛고 이전보다 더 단단해지는 변화다.

    회사에서 지칠 대로 지쳤다가도 나를 믿어주는 선배나 동료의 말 한마디에 이유 없이

    다시 버틸 힘이 솟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믿음은 인간을 다시 세우는 가장 오래된 힘

    니체는 인간의 성장을 두고 “내 안의 잠든 힘을 깨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힘은 보통 스스로 깨어나지 않는다.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바라봐주는 순간,

    나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비로소 깨어난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순간조차 나를 믿어주는 타인의 시선.

    우리는 그 시선 속에서 다시 앞으로 걸을 수 있다.

    그러니 성장은 언제나 개인적인 동시에 관계적이다.

    김연경의 독설이 상처가 되지 않는 이유도 그 바탕에 변하지 않는 신뢰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난 너를 믿는다. 그리고 너는 결국 해낼 사람이다.”

    당신이 약해서 무너진 게 아니다

    매일 흔들리는 우리에게 이 이야기는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지금 당신이 직장에서 힘들고 지쳐 있다면, 그건 당신이 실패해서가 아니다.

    당신이 약해서도 아니다.

    다만 오랫동안 “괜찮아, 넌 다시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안전기지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가 김연경의 이야기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그 말이 결국 우리 모두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카피처럼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담담하게 전하고 싶다. 지금 그 힘든 곳에서 버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당신의 강함이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도 누군가의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할 한 문장을 건네게 될 것이다.

    그때가 오면 주저 없이 말해주기를 바란다.

    “괜찮아. 나는 너를 믿는다.”

  • 고통 없이 진화는 없다지만, 모든 고통이 우리를 키우는 건 아니다

    “고통 없이 인간은 진화하지 못한다. 그러니 즐겨라.”

    며칠 전 뉴스에서 이 문장을 봤다.

    어느 재벌가의 장남이 해군 장교로 임관하며 내세운 좌우명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가만히 있어도 편안한 삶이 보장되었을 텐데,

    굳이 시민권을 포기하고 39개월의 군 복무를 선택하며 남긴 말이었다.

    댓글창에는 대단하다는 칭찬과 가진 자의 여유라는 비아냥이 섞여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처음엔 살짝 심술이 났다.

    돈도 배경도 다 가진 사람이 고통을 즐기라고 말하니 그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문장이 며칠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회사 생활이 유독 버거웠던 탓일까.

    우리가 “고통을 즐겨라”라는 말에 화가 나는 이유

    우리가 직장에서 겪는 고통은 대개 예고 없이, 그리고 선택권 없이 찾아온다.

    퇴근 직전에 떨어지는 급한 보고서,

    기분 따라 기준을 바꾸는 상사,

    책임은 피하고 공만 가져가는 사람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시스템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해야 하는 상황들.

    이런 상황을 두고 고통을 즐기라고 말하면,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폭력처럼 들린다.

    마치 “조금만 더 참아, 네가 더 노력하면 돼”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이것은 내가 성장을 위해 선택한 고통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떠안게 된 남의 고통일 뿐이라는 것을.

    즐길 수 있는 고통과 견뎌내야만 하는 고통은 엄연히 다르다.

    나를 진화시키는 고통 vs 나를 소모시키는 고통

    그 문장을 곱씹으며 나의 지난 회사 생활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하나는 나를 진화시키는 고통이었다.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한 프로젝트,

    어렵지만 끝내고 나면 분명히 배울 것이 있는 일,

    긴장되지만 마치고 나면 “그래도 해보길 잘했다” 싶은 도전들.

    이런 고통은 겪을 때는 힘들어도 지나고 나면 자존감이 차오른다.

    어제의 나보다 조금은 더 나아졌다는 성장의 감각이 남기 때문이다.

    반면 나를 소모시키는 고통도 있었다.

    사람 사이의 정치질에 휘말려 감정을 다치는 일,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비효율적인 시스템 속에서 단순히 버티기만 하는 일.

    이런 고통은 끝나고 나면 성취감이 아니라 깊은 허무함만이 남는다.

    “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질문과 함께 나 자신이 닳아 없어지는 느낌만 든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자주,

    나를 갉아먹는 두 번째 고통까지도 “성장을 위해 참아야 한다”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직장에서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구분

    완벽한 회사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 마음이 망가지지 않으려면

    고통의 종류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고통의 주인은 누구인가.

    내가 선택한 도전인가, 아니면 남이 떠넘긴 숙제인가.

    만약 후자라면 그건 즐겨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때 필요한 건 무조건적인 인내가 아니라, 적절한 선 긋기와 거절이다.

    또한 기록해 본다.

    이 경험이 지나고 나면 내게 무엇이 남을지. 기술이 남든,

    사람 보는 눈이 생기든,

    하다못해 “다시는 이렇게 일하지 않겠다”는

    기준이라도 남아야 한다.

    만약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면,

    그건 내 인생에서 최대한 빨리 정리해야 할 불필요한 고통일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를 배분하는 일이다.

    소모적인 고통에 내 모든 힘을 써버리면,

    정작 나를 진화시킬 진짜 기회가 왔을 때 쓸 힘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

    회사 일은 회사 일대로 하되,

    퇴근 후 30분이라도 온전히 나를 위한 공부나 글쓰기에 에너지를 남겨두는 것.

    회사가 나를 힘들게 할수록,

    나는 더욱 회사 밖의 나를 단단하게 키워야 한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내 방식대로

    솔직히 나는 아직도 “고통을 즐기라”는 말에는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겠다.

    대신 나는 그 말을 내 식대로 바꿔서 마음에 적어두기로 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내가 진짜 원하는 내 모습에 가까워지는 데 써먹자.”

    남이 만들어 놓은 지옥 같은 상황을 성장의 기회라며

    억지로 포장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가 스스로 선택한 고통에는

    그만큼의 의미와 자부심을 부여해주기로 했다.

    안전한 길을 버리고 어려운 길을 택한 뉴스 속 그 사람처럼 말이다.

    우리에게도 매일 그런 선택의 순간이 온다.

    거창한 결심이 아니더라도,

    오늘 하루 누군가의 눈치를 보느라 나를 깎아내릴 것인가,

    아니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내 기준을 지킬 것인가.

    그 작은 갈림길에서의 선택이 나를 진화시키는 고통이 될지,

    그저 소모시키는 고통이 될지를 결정한다.

    오늘 당신이 겪고 있는 그 힘듦은 어느 쪽인가.

    만약 나를 갉아먹는 쪽이라면,

    즐기지 않아도 된다. 참지 않아도 된다.

    당신의 고통은 당신을 성장시키는 연료가 되어야지,

    당신을 태워 없애는 불길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